2007년 11월 16일
발해가 한국의 역사인가?
KBS 주말 사극 대조영을 보고 문득 의문점이 떠올랐습니다.
'발해는 한국의 역사인가?'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발해와 고구려는 국가의영토도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고구려의 영토는 북부여의 송화강 유역이 경계였던 반면 발해는 동류 송화강을 북쪽 경계로 하여 흑룡강의 중류, 연해주의 중앙부로 거란, 여진등의 유목민족의 영토로 분명히 다릅니다.
고구려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직접 지배하거나 고구려인이 직접 생활하고 다스리지는 않았던 지역에 성립된 나라입니다. 그 땅에 살고 있던 민족구성도, 고구려 시대와 발해 시대는 다릅니다. 국사책에도 발해의 주민은 거란, 말갈이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대조영이 고구려부흥의 기치를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이룩한 나라는 고구려를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그가 세운 또다른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국사책에서는 발해지배층의 고구려 계승선언, 지배층의 고구려식 생활 양식등을 들어 발해가 한국역사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노르만 공 정벌후의 영국은 프랑스 역사입니까? 11세기 후반 프랑스 노르만 공 윌리엄은 영국정벌후 영국의 왕이 되었고 지배층도 프랑스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노르만 공은 영국을 점령하긴 했지만 계속 노르망디의 공작으로 남아잇었고 그와 귀족들이 사용한 언어는 프랑스어 였으며 그들의 생활 양식도 프랑스 문화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영국은 프랑스 역사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결국 한 국가의 역사라고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영토와 민족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피지배층의 인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이것이 국가의 역사가 어디에 귀속하는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로 노르만 지배기의 영국을 들었지만, 가까운 예로 일제치하 시기의 조선도, 그 총독은 일본인이었으며 그들은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조선과 일본이 하나임을 역설했습니다. 그렇다면 36년간 조선은 일본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까?
위와 같은 논점에서, 발해는 한국의 역사에 포함시켜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관적인 사견입니다. 반박은 환영합니다.
'발해는 한국의 역사인가?'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발해와 고구려는 국가의영토도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고구려의 영토는 북부여의 송화강 유역이 경계였던 반면 발해는 동류 송화강을 북쪽 경계로 하여 흑룡강의 중류, 연해주의 중앙부로 거란, 여진등의 유목민족의 영토로 분명히 다릅니다.
고구려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직접 지배하거나 고구려인이 직접 생활하고 다스리지는 않았던 지역에 성립된 나라입니다. 그 땅에 살고 있던 민족구성도, 고구려 시대와 발해 시대는 다릅니다. 국사책에도 발해의 주민은 거란, 말갈이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대조영이 고구려부흥의 기치를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이룩한 나라는 고구려를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그가 세운 또다른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국사책에서는 발해지배층의 고구려 계승선언, 지배층의 고구려식 생활 양식등을 들어 발해가 한국역사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노르만 공 정벌후의 영국은 프랑스 역사입니까? 11세기 후반 프랑스 노르만 공 윌리엄은 영국정벌후 영국의 왕이 되었고 지배층도 프랑스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노르만 공은 영국을 점령하긴 했지만 계속 노르망디의 공작으로 남아잇었고 그와 귀족들이 사용한 언어는 프랑스어 였으며 그들의 생활 양식도 프랑스 문화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 영국은 프랑스 역사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결국 한 국가의 역사라고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영토와 민족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피지배층의 인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이것이 국가의 역사가 어디에 귀속하는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로 노르만 지배기의 영국을 들었지만, 가까운 예로 일제치하 시기의 조선도, 그 총독은 일본인이었으며 그들은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조선과 일본이 하나임을 역설했습니다. 그렇다면 36년간 조선은 일본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까?
위와 같은 논점에서, 발해는 한국의 역사에 포함시켜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관적인 사견입니다. 반박은 환영합니다.

# by | 2007/11/16 07:23 | 편견or사견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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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분의 이 말 한마디에 모든 오류가 집적되어 있습니다. 저 명제의 오류를 아시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 없겠지요.
그냥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고구려의 역사도 그렇듯. 부여의 역사는 부여사람들의 역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내 역사 니 역사 하면서 무자르듯이 탁 잘라서 나누고 말고 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구요.
역사적으로 피지배계층이 자신들은 고구려의 계승을 않았다는 문서나 기록을 보지 않은 이상, 고구려의 계승이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듣보잡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겠지요.